크리스챤 디올

 

'''DIOR'''
디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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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1]
'''설립'''
1947년
'''설립자'''
크리스티앙 디오르
'''회장'''
베르나르 아르눌트
'''부회장 | CEO'''
시드니 톨레다노
'''수석 디자이너'''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여성복)
킴 존스 (남성복)
'''본사'''
프랑스 파리
'''사업'''
화장품, 패션
공식 웹사이트
[image]
'''디올의 시그니쳐 로고인 CD 로고. 사진속의 가방은 몽테인 백이다.'''
[image]
'''청담동에 위치한 플래그십 스토어 '하우스 오브 디올''''[2]
1. 개요
2. 상세
2.1. 국내 매장
2.2. 패션 계통
2.3. 디올 뷰티(화장품)
3. 주요 제품
3.1. 가방
4. 신발
5. 논란
6. 기타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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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47년에 설립된 프랑스의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 주로 디올이라고 불리며, 화장품패션 품목을 주로 생산 하는 브랜드이다.

2. 상세


LVMH 그룹에 속해있고, 지배구조 상으로는 중간지주회사 역할을 한다. 디올의 100퍼센트 자회사인 Financiere Jean Goujon이 LVMH 지분의 42.36%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 최초 창립자인 크리스티앙 디올코코 샤넬과 더불어 가장 대중들에게 유명한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둘은 193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패션계의 최고 자리를 가진 경쟁자였다.
디올의 남성복 브랜드인 디올 옴므는 해당 문서 참고.
과거에는 국내에서는 유독 비슷한 포지션의 브랜드들이나, 디올옴므에 비해 국내 인기가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다[3]. 그러나 2018년대 들어서 LVMH사의 경영변화와 방탄소년단, 수지 등 인기 연예인들의 홍보 활동과 킴 존스 이후 젊은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디자인, 레이디 디올, 세들백와 특히 슈즈의 인기 상품에 힘입어 국내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7년 637억 원이었던 국내 매출이 2018년에는 967억 원, 2019년에는 1864억 원으로 크게 신장하였다. 2015년 하우스 오브 디올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2018년 디올 맨즈 재진출 등 국내 시장에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친 효과가 빛을 발했다는 평가이다.

2.1. 국내 매장


국내에 화장품 매장은 많지만 패션 부티크는 수가 적다. 인지도가 높지만, 실제로 LVMH 브랜드중에서도 매장수가 적은편에 속한다. 그렇다보니 국내 대도시에 위치한 주요 백화점의 핵심지점에만 입점해있다.

  • 하우스 오브 디올[4]
  • 롯데백화점 본점에비뉴엘, 잠실에비뉴엘, 부산본점
  • 신세계백화점 본점(남/여), 강남점, 센텀시티점(남/여), 대구신세계, 광주신세계
  •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EAST(남/여), 광교점[5]
패션 부티크의 수가 12개로 적은 이유는 인지도는 높지만, 요즘과는 다르게, 2018년 이전까지는 국내에서는 디올이 패션 부분에서 주목을 받기 전이라 아무래도 향수, 화장품의 비중이 더 높은 브랜드였으며,#[6] 패션 부티크는 백화점의 규모와 매출이 수준급 이상 되는 지점에만 입점하기에 부티크가 많이 없는 편.[7]
국내에는 아울렛 매장이 없지만, 해외에는 아울렛 매장이 있다.
남성 제품을 취급하는 디올 맨즈 매장은 플래그십 스토어인 하우스 오브 디올과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갤러리아백화점 광교점에 입점되어 있다.

2.2. 패션 계통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올의 메이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화려하고 사치스럽고 극도로 여성적인 옷을 만들었다. 이는 전쟁 직후의 망가진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며 수많은 사람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반대로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미국의 잡지 하퍼스 바자의 당시 편집장이 "이건 정말 본 적 없는 옷(NEW LOOK)이다"라는 극찬을 하면서, 크리스찬 디올은 "뉴 룩"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갖게 되었다.
1957년 크리스티앙 디올은 불행히도 심장마비로 52세의 나이에 사망하고, 그 후계자는 디올의 제자이자 패션계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브 생로랑이 맡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는 21세...
생로랑은 파산 직전의 디올을 다시 최고의 브랜드로 올려놓았을 뿐 아니라, 트라페즈 드레스라는 옷으로 여성패션계에서도 유례 없는 대히트를 친다. 하지만 이후의 디자인은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59년 컬렉션은 대중과 미디어 모두의 질타를 받게 되었다. 생로랑은 그 후 국적 문제로 군입대를 해야 했으며, 디올은 또 난관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 후 한동안 그 명성이 시들시들했다가, 또 다른 천재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메인 디자이너로 데뷔, 과거의 디올의 명성에 걸맞는 화려한 오트 꾸뛰르를 보였다.
허나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해서 해고당한 뒤[8], 그의 오른팔이었던 빌 게이튼이라는 디자이너를 잠시 디자이너로 앉히지만, 그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아닌 대체용 디자이너일 뿐이었다.
그렇게 별 성과를 내지 못한 채 2년의 시간이 흐르다 전 질 샌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벨기에 출신 라프 시몬스를 영입한다. 미니멀리스트로 정평이 난 디자이너다보니 여성스럽고 우아한 디올 하우스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으나, 결과적으로 초기 디올의 정신을 부활시키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9] 2011년 대비 판매량도 60% 가량 올랐다고(2015년 기준). 한편 디올 옴므의 경우 에디 슬리먼의 오른팔이었던 남성복 디자이너 크리스 반 아쉐가 계속 디렉터를 맡아오고 있다.
그러던 2015년 10월 라프 시몬스가 재계약을 거절하고 디렉터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물러나게 됐다. 현재 여러 인물들이 후속 디렉터로 거론되고 있는 중. 반면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크리스 반 아쉐는 디올 옴므에만 집중하기 위해 본인의 레이블까지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라프 시몬스를 이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정해졌다. 후임자는 바로 발렌티노 출신의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로, 2017년 S/S 컬렉션 데뷔와 함께, 그 전의 디올과는 다른 이미지로 접근하여, 신선함을 안겨주고 있는 중. 특히, J'ADIOR이라 적혀있는 리본 디테일의 슬링백과, 17 S/S 컬렉션에서 선보였던 아이템 중 "We should be all femminist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한다.) 라는 티셔츠는 화제를 몰고 오기도 했었다.
치우리의 디올 CD 부임은 꽤나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도 한데, 여성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하우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동안 디올을 걸쳐갔던 CD들은 전부 남성들이었다.[10] 디올의 역사상 첫 여성 CD이기도 하고, 그 동안 남성 디자이너들이 보여주었던 감성과는 달리 '여성을 가장 잘 아는 여성'으로써, 앞으로의 디올을 어떻게 이끌고 나갈지 다들 기대하는 분위기.

2.3. 디올 뷰티(화장품)


화장품 중에서도 스킨케어 제품보다는 메이크업, 특히 색조 제품이 유명하다. 5 디올 5 꿀뢰르(5구짜리 아이섀도), 입술마다 각기 다른 발색을 보여준다는 디올 어딕트 립글로우, 어딕트 울트라 글로스, 디올 팩트 등이 유명하다.
특히 디올 남색 팩트는 샤넬 제품과 함께 꺼내서 거울을 보기만 해도 어깨가 으쓱해지는 효과를 발휘한다고도 하지만 꽤나 고가(7만원대)다.[11] 지금은 단종 + 리뉴얼로 디올 스킨 포에버로 바뀌었다.
기초 제품 중 디톡스 효과를 내세운 '원 에센셜'이 잠깐 반짝했지만, 보잘 것 없는 전성분 + 디톡스 화장품 유행의 빠른 쇠락으로 오래 가지 못했다. 사실 샤넬과 함께 '''색조만''' 이름값 하는 브랜드라서 한국에서 유난히 기를 못 편다.

'''Canción Anuncio Dior J'adore 2012: Charlize Theron'''
디올 대표 향수인 자도르 디올(J'adore dior)의 광고가 그레이스 켈리, 마릴린 먼로를 연상시키는 광고를 내었다. 해당 향수 광고 모델인 샤를리즈 테론의 레전드 영상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는 1980년대 초반에 아모레퍼시픽(구. 태평양)과 기술 제휴를 맺다 1994년에 직접 진출하였다.[12]
여성 패션•뷰티 잡지 쎄씨(Ceci) 2010년 4월호에 있는 디올 어딕트 울트라 글로스 뷰티 화보에 아이돌 걸그룹 시크릿전효성, 정하나, 송지은, 한선화가 뷰티 모델로 출연했다.

3. 주요 제품



3.1.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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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디올 클러치 (페이던트)
레이디 디올 미듐 페이던트 (24cm, 송아지 가죽)
대표적인 아이템으로는 레이디 디올 백이 있다. 1995년 다이애나 스펜서의 프랑스 방문 때 당시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의 영부인 베르나데트 시라크가 디올에 요청해 디올은 비공식적으로 Chouchou라는 이름의 백을 전달해 이를 다이애나 비에게 선물했고, 후에 다이애나 비가 이 가방을 들고다니던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며 주목을 받았고, Lady Dior이란 이름으로 정식 발매되어 날개돋힌 듯이 팔렸다. 국내에선 김태희, 전지현, 염정아, 송혜교, 수지 등 많은 여성 톱스타들이 들고다녀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레이디 디올 라인에 사용된 패턴의 까나쥬 패턴이라는 이름이 있으며, 레이디 디올 라인에는 D.I.O.R 알파벳이 달린 백 참이 붙어있는데, 해당 참의 이름은 럭키 참[13]이다. 가격대는 2020년 기준 미니 체인백[14]이 240만원, 미니 사이즈가 510만원, 스몰 사이즈[15] 560만원, 미디엄 사이즈가 620만원, 라지 사이즈가 670만원으로 명품중에서도 고가에 속하는 제품이며, 가격 상승도 자주 하는 제품이다.
또 디올의 새들 백, 몽테인 백 등도 스테디 라인업이다. 새들 백, 몽테인 백은
3~400만원대로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4.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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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은 B23이라는 오블리크 패턴의 남성 스니커즈도 꽤 인지도가 높다. 다만 명품 스니커즈 치고도 높은 가격이 흠인데, 2021년 2월 기준 매장 가격이 로우는 125만원, 하이는 135만원이다. 디올 브랜드 특성 상 인터넷에서 구입해도 백화점 정가와 가격 차이가 별로 없다.

5. 논란


  • 전범기 논란에 휩싸였다. 4월에 상하이에서 열린 2018 S/S 컬렉션이 주인공. 파리에서 열린 2018 S/S 쿠틔르 쇼의 리바이벌로, 오로지 중국 시장을 위하여 컬렉션 피스들의 컬러부터, 신규 디자인까지 출시하여 쇼를 진행 하였는데, 드레스 중 하나가 전범기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었다. 이 사실이 퍼지면서 중국 네티즌들 사이로 디올을 향한 거센 비난 및 항의가 쏟아졌으며, 이에 디올은 "전범기가 아니다, 부채를 형상화 한 디자인이다." 라고 해명을 내 놓았지만, 해프닝으로 그치기엔 너무 전범기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라(...). 이 소식은 한국까지 넘어와, 우리나라 네티즌 사이에서도 거센 반발이 있었으며, 그 이후로 디올에서 공식적인 답변은 내 놓지 않고 있다. 당분간 중국 내에서도 거센 반발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며, 디올의 명확한 사과나 해명이 없는 한, 매출이 감소하는 것을 막을 순 없을 것이다. 그것도 그런게, 동아시아권에서 일본 다음으로 중국이 매출이 제일 잘 나오며, 아무리 중국 내 사치세로 인하여 매출이 전 보단 많이 감소했다 하여도, 중국인들의 머니파워 및 중국 시장의 잠재력을 무시 할 수가 없기에.
  • 대한민국에서는 청담동 하우스 오브 디올에서 열린 전시회 중 유흥가 앞에서 디올의 레이디 백을 들고 디올 옷을 입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한국 여성'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어 여성 비하 논란이 일었다. '소주방', '룸비무료' '파티타임' 등의 간판이 걸린 유흥가 앞에서 명품을 입고 있는 모습이 마치 성매매를 통해 돈을 벌어서 명품을 사입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또 이것에 제목을 한국 여성으로 붙여서 여성 비하 논란이 거셌다. 다만 이 사진을 찍은 작가 이완은 한국인이다(..)

6. 기타


  • 대한민국에서도 2015년 <디올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디올 하우스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시가 DDP를 통해 크게 열린 바 있다. 아시아 시장 매출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평.[16] 잇따라 2015년 6월 청담동에도 디올 플래그쉽 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개장이 계속 연기되고 있었는데, 2015년 1분기 → 2015년 4월 → 2015년 5월 → 2015년 6월로 미뤄졌다. 한국에서 철수했던 디올 옴므도 다시 들어온다고 한다.

7. 둘러보기




[1]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들어온 뒤 바뀐 로고, 최근에 개장한 부티크는 전부 이 로고가 걸려있다.[2] 아시아권 매장에선 최대 규모라고 하며 독특한 디자인으로 화제가 됐었다. 프랑수아 올랑드프랑스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이 매장에 방문하기도 했다. 물론 쇼핑하러 온 것은 아니고 자국의 대표 브랜드인 점과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으로 방문한 듯하다. (링크)[3] 때문에 위에 갤러리아 타임월드를 비롯하여 롯데백화점 대구점 매장과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과 갤러리아 명품관의 디올 옴므 매장을 전부 철수시키기도 하였다. [4] 플래그십 스토어[5] 백화점 최초 남.여 통합 부틱이다.[6] 가방 역시 레이디 백을 제외하면 경쟁사인 루이비통이나 샤넬과 달리 이렇다 할만한 제품이 없었고 레이디 백도 당시에는 지금처럼 주목을 받지는 못했었다.[7] 과거 갤러리아백화점 대전 타임월드점에도 입점해 있었으나, 2020년 과는 다르게 그당시에는 매출 부진으로 인해 철수 후 프라다로 매장이 바뀌었다.[8] 현재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패션계에 복귀했다.[9] 이 과정은 그의 첫 디올 쇼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디올 앤 아이>에 잘 드러나 있다.[10] 크리스티앙 디올 → 이브 생 로랑 → 지안 프랑코 페레 → 존 갈리아노 → 라프 시몬스[11] 당연하지만 지금은 이게 면세점 가격이다.[12] 크리스찬디올코리아-코럭스 유한회사-엘브이엠에치 코스메틱 코리아 유한회사로 이름이 변경.[13] 크리스찬 디올의 창립자인 크리스티앙 디올무속신앙을 믿었는데, 참이 흔들릴때마다 나는 소리가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어서 이름이 럭키 참이 된것이다.[14] 레이디 디올 클러치 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레이디 디올 라인의 미니 체인백이다.[15] 국내에선 마이 ABC 레이디 디올이라는 이름으로 판매중.[16] 도쿄에서 2015년 프리폴 쇼를 열고 FW 쇼를 리바이벌하기도 했다. 디올 옴므 역시 상하이에서 2014년 FW 쇼를 리바이벌했다.